삼 년을 매일 앉으신 자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앉을 때마다 어깨가 먼저 올라간다고 하셨지요. 오래됐으니 편해질 때도 됐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셨습니다.
시간이 만들어주는 건 편안함이 아니라 익숙함입니다. 둘은 다른 감각입니다.
익숙함은 몸이 길을 아는 상태입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음에 무슨 일이 오는지를 몸이 압니다. 그래서 힘이 덜 듭니다. 다만 힘이 덜 드는 것과 편한 것은 다릅니다.
편안함은 긴장이 풀린 상태입니다. 경계할 것이 없다고 몸이 판정했을 때만 옵니다. 오래 다녀도 경계할 것이 남아 있으면 안 옵니다.
그러니 익숙한데 안 편한 자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상한 일이 아니라 두 감각이 서로 다른 조건에서 켜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익숙함이 편안함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힘이 덜 드니까 괜찮은 줄 압니다.
그런데 익숙함은 안 좋은 상태도 똑같이 익숙하게 만듭니다. 매번 조마조마한 자리도 삼 년이면 조마조마한 채로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오래 버틴 것이 곧 잘 맞는다는 증거는 못 됩니다.
이 자리에서 판단이 자주 틀어집니다. 견딜 만하니까 문제가 없다고 정리하는 거지요.
지금 그 자리를 두고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거기 있을 때 몸이 어떻습니까?
머리에게 묻지 마시고 몸에게 물으시는 게 정확합니다. 머리는 오래된 것을 좋은 것으로 정리하는 버릇이 있으니까요.
편안함이 안 오는 자리에는 대개 예측이 안 되는 항목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은 익숙한데 딱 하나가 매번 다릅니다. 사람의 기분이거나, 갑자기 오는 요구이거나요.
몸은 그 하나 때문에 계속 대기합니다. 아흔아홉이 익숙해도 하나가 남으면 긴장은 안 풀리지요. 그래서 편안함은 평균이 아니라 최악의 항목 하나에 걸려 있습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다 좋은데 왜 안 편하냐고 자기를 탓하시는 겁니다. 다 좋아서 편한 게 아니라 하나도 안 남아야 편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편안함 쪽이면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 자리는 지키시면 됩니다. 생각보다 드뭅니다.
익숙함 쪽이면 할 일은 남아 있는 한 항목을 찾는 것입니다. 자리를 옮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어깨가 올라가는지 하나만 특정하시면, 그게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가 그 자리에서 판정됩니다. 바꿀 수 있으면 손보면 되고, 없으면 적어도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은 확인되겠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어느 자리에서 어깨가 올라갔는지 하나만 기억해 두시죠. 그 자리가 익숙한 자리입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