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화면에서 누군가 길게 말하고 있었고, 옆을 지나던 이웃이 소리를 줄이지도 않고 한 마디 했습니다. 저건 해명이 아니라고요.
무엇을 보고 그렇게 판정했을까요. 저는 그 판정 기준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두 단어를 다시 갈라 적어 두었습니다.
해명은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내놓는 일입니다. 언제,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 말 안에 들어 있습니다. 듣고 나면 확인해 볼 항목이 늘어납니다.
변명은 사정을 내놓는 일입니다. 얼마나 바빴는지, 어쩔 수 없었는지, 몰랐는지가 들어 있습니다. 길이는 더 길 때도 있는데 확인할 항목은 하나도 늘지 않습니다.
그래서 듣는 쪽에서는 금방 갈립니다. 말이 끝났을 때 손에 뭔가 쥐어졌으면 해명이고, 아무것도 안 남았으면 변명이지요.
변명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그런데 화가 나는 이유가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닙니다. 판정할 재료를 안 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판정이 미뤄지는 상태를 오래 못 견딥니다. 재료를 못 받으면 판정을 못 하고, 판정을 못 하면 감정만 남습니다. 그 감정이 화로 나오는 거지요.
이웃이 소리를 줄이지도 않고 한 마디 던지고 지나간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길게 들었는데 세어볼 것이 없었으니까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할 때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방금 들은 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늘었습니까?
기준을 말투에 두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공손한 변명도 있고 무뚝뚝한 해명도 있으니까요.
이건 남을 판정할 때만 쓰는 자가 아닙니다. 제 말이 어느 쪽인지 볼 때도 같은 자로 잽니다.
늦은 이유를 말할 때 제가 몇 시에 나왔는지를 말하면 해명이고,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를 말하면 변명입니다. 저도 후자 쪽으로 자주 기웁니다. 사정을 말하는 편이 덜 아프거든요. 사실을 내놓으면 그게 그대로 판정 대상이 되니까요.
그런데 사정만 내놓으면 상대는 계속 판정을 못 합니다. 판정을 못 하는 상대는 결국 사람 자체를 판정하게 됩니다. 사건에 대한 판정을 피하려다 사람에 대한 판정을 받는 셈이지요.
상대의 말이 해명이면 할 일은 확인입니다. 항목이 늘었으니 하나씩 맞춰보면 됩니다.
변명이면 확인할 게 없으니 다른 걸 하셔야 합니다. 되물어서 항목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화를 내는 것보다 이쪽이 낫습니다. 화를 내면 상대는 사정을 더 늘리고, 되물으면 사실을 내놓든 못 내놓든 그 자체가 답이 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누군가의 긴 말을 들으셨다면 세어보시죠. 확인할 게 몇 개 늘었습니까. 영이면 길이는 상관없습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