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에 아무 말도 안 해놓고, 연락이 없자 하루 종일 화면을 뒤집어 두었다 놨다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저녁에는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만 여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있었습니까?
모를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건 안 지켜진 게 아닙니다. 청구서를 안 보내놓고 미납이라고 적으신 겁니다.
바람은 내 안에서 끝나는 마음입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 안 되어도 상대에게 갈 것이 없습니다. 아쉽지만 그뿐입니다.
기대는 상대에게 청구되는 마음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계산이 서 있습니다. 안 되면 아쉬움이 아니라 배신감이 옵니다. 청구한 것이 안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크기가 아닙니다. 간절함이 크면 기대이고 작으면 바람인 게 아닙니다. 아주 간절해도 상대에게 안 갔으면 그건 바람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대는 말해야 상대에게 도착합니다.
말 안 한 기대는 내 안에서만 청구서로 존재합니다. 상대의 장부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 안 지킨 게 아니라 애초에 받은 적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쪽에서는 분명히 청구했다고 느낍니다.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뇌었으니까요. 되뇐 횟수가 많을수록 더 확실히 보낸 것 같습니다. 한 번도 안 보냈는데 말입니다.
앞서 서운함과 억울함을 갈라둔 적이 있습니다. 그건 일이 벌어진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기대와 바람은 그 앞 단계입니다. 벌어지기 전에 청구서를 보냈느냐를 보는 것이지요. 여기서 안 보냈다면 뒤에 오는 서운함은 상대의 몫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그 말을 소리 내어 한 적이 있습니까?
여기서 "말 안 해도 알아야지"라는 생각이 드시면, 그건 말한 것으로 치고 싶은 마음이지 말한 게 아닙니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바람이겠지요.
바람 쪽이면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청구서를 보내는 것입니다. 한 줄이면 됩니다. "그날은 연락 받고 싶어." 유치하다고 여기실 수도 있는데, 유치한 쪽과 하루 종일 화면을 뒤집는 쪽 중에 어느 쪽이 나을까요.
기대 쪽이면 할 일은 정확하게 적어두는 것입니다. 무엇을 언제 청구했고 안 들어왔다는 사실만 적습니다. 감정을 싣지 않고 적어두면, 이게 한 번인지 반복인지가 보입니다. 한 번이면 넘어갈 일이고 반복이면 말할 일입니다.
두 경우 모두, 말 안 한 마음을 안 지킨 약속으로 적는 것만 그만두시면 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기다리다 마음이 상하신 일이 있으시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소리 내어 말한 적이 있는지.
정확히 부르는 것만으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