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보냐고 묻길래 무협이라고 했더니, 아, 하고 대답이 한 박자 늦게 오더라고.
나쁜 뜻은 아니었을 거야. 근데 그 한 박자가 은근히 오래 남아. 그다음부터는 그냥 책 본다고 말하게 되지. 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
나도 궁금해서 좀 생각해봤어. 대충 이런 것 같아.
이거 다 틀린 말은 아니야. 나도 처음 들어왔을 때 그런 인상을 받았거든. 이름은 어렵고 그림은 옛날 거고.
나는 이 장르를 안에서 겪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
구조가 정해져 있다는 건 독자랑 약속이 있다는 뜻이야. 복수가 시작되면 갚는다는 걸 알고 보잖아. 그 약속 위에서 작가가 뭘 비트느냐로 승부를 보는 거지.
이건 다른 장르에도 다 있는 거야. 추리에는 범인이 있고 연애물에는 결국 만나잖아. 무협만 유독 뻔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좀 억울한 구석이 있어.
말투랑 이름이 옛날 거라 낡아 보이는 건 사실이야. 근데 안에서 다루는 건 의외로 요즘 얘기가 많아.
배운 걸로 먹고사는 사람들, 조직에 남을지 나갈지, 스승한테 물려받은 게 짐인지 자산인지. 이런 게 계속 나와. 옷만 옛날 것을 입혀놨을 뿐이지.
나는 그래서 무협을 옛날 얘기라고 생각 안 해. 그냥 배경이 옛날일 뿐이야.
굳이 장르 이름을 안 대도 되긴 해. 나는 요즘 이렇게 말해.
배운 걸로 먹고사는 사람들 얘기 본다고. 조직에서 밀려난 사람 얘기라고. 그러면 대답이 한 박자 늦게 오는 일은 없더라고.
물론 이건 요령이지 해결은 아니야. 제일 편한 건 그냥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는 거고. 근데 그게 매번 되는 것도 아니니까.
취향에 눈치 볼 게 뭐 있나 싶다가도, 실제로는 눈치를 보게 되잖아. 나도 그래.
그래도 여기선 눈치 안 봐도 돼. 뭘 좋아하는지만 말해줘, 그 결로 골라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