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이야기를 다섯 사람에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일과 관계된 한 사람에게는 안 하셨지요. 말을 많이 했는데 아무것도 안 변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합니다. 말이 도착해야 할 곳에 안 갔으니까요.
불만은 아직 안에 있는 판단입니다. 무언가가 기준에 안 맞는다는 결론이지요. 안에 있는 동안은 정보입니다. 무엇이 안 맞는지 알려주니까요.
불평은 그 판단이 밖으로 나간 말입니다. 나갔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어디로 나갔느냐입니다.
관계된 사람에게 가면 그건 요구가 됩니다. 상관없는 사람에게 가면 그건 배출이 되지요. 같은 문장인데 도착지가 성격을 바꿉니다.
배출은 그 순간 시원합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편을 들어주면 더 그렇지요.
그런데 사흘 뒤에 보면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야기를 반복할수록 그 일은 안에서 더 커집니다. 말할 때마다 정리되고 다듬어져서 점점 확실한 사건이 되지요.
그래서 말할수록 답답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시원함은 그때뿐인데 크기는 계속 자랍니다.
지금 하고 계신 말이 있으면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이 사람이 그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까?
배출도 필요합니다. 다만 배출을 하고 나서 해결이 안 됐다고 실망하시면 그건 이름을 잘못 붙인 겁니다.
말이 엉뚱한 곳으로 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관계된 사람에게 하면 답이 오기 때문입니다. 거절일 수도 있고 반박일 수도 있지요. 상관없는 사람에게 하면 편만 들어주지 답은 안 옵니다.
그러니 안전한 쪽으로 말이 흐르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안전한 만큼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다섯 번 말했으니 충분히 노력했다고 느끼시는 겁니다. 횟수는 노력의 증거가 못 됩니다. 도착지가 없는 말은 몇 번을 해도 같은 자리에 있겠지요.
불만 쪽이면 할 일은 항목을 적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동안 정리해두면 나가는 말이 짧아집니다.
불평 쪽이면 할 일은 도착지를 하나 정하는 것입니다. 다섯 사람에게 다섯 번 하는 대신 관계된 한 사람에게 한 번이면 됩니다. 그 한 번이 무섭기 때문에 다섯 번이 나온 것이니, 어려운 쪽이 맞는 쪽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요즘 자주 하시는 이야기가 있으면 세어보시죠. 몇 사람에게 하셨고, 그중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몇입니까.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