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공 얘기를 전에 적었어. 지붕 밟고 다니는 게 왜 반칙인지. 오늘은 그 경공에 붙는 이름을 볼게.
무협 읽다 보면 경공 묘사에 넉 자짜리 말이 붙어. 등평도수, 답설무흔, 초상비. 처음엔 그냥 멋있는 말인 줄 알았어.
알고 보니 이 이름들이 경공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이었어.
등평도수는 갈대 하나를 밟고 물을 건넌다는 뜻이야. 물 위를 걷는 경공이지.
물은 밟으면 빠지잖아. 그걸 안 빠지고 건너려면 몸이 엄청 가벼워야 해. 그러니까 이건 경공이 꽤 높은 데까지 갔다는 표시야. 지붕 뛰어다니는 것보다 한참 위로 그려져.
무협에서 강을 건너는 장면이 나오면 이 말이 자주 붙어. 배를 기다리지 않고 물 위로 그냥 가는 거야.
답설무흔은 눈을 밟아도 흔적이 없다는 뜻이야.
눈은 가볍게 밟아도 발자국이 남아. 그게 안 남는다는 건 거의 무게가 없다는 말이지. 그래서 이건 등평도수보다도 위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추격 얘기를 전에 적었어. 쫓는 쪽은 흔적을 보고 따라간다고. 답설무흔이면 따라갈 게 없어. 그래서 이 경공을 쓰는 인물은 잡을 수가 없는 사람으로 나와.
초상비는 풀 위를 날 듯 달린다는 뜻이야. 풀잎이 꺾이지 않을 만큼 가볍게.
이렇게 놓고 보면 무협 경공 이름은 밟는 게 점점 약해지는 순서야. 지붕, 풀, 물, 눈. 밟는 게 약해질수록 경공이 높은 거지. 다만 글마다 순서는 조금씩 달라. 정해진 표는 없거든.
비 온 다음 날 객잔 앞길이 진흙탕이 됐어.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다 발자국을 남겼지.
근데 한 손님이 까치발로 들어오더라. 발자국을 덜 남기려고. 다들 그걸 보고 답설무흔이라고 놀렸어. 물론 발자국은 그대로 남았지.
그날 알았어. 무협 경공 이름이 왜 다 밟는 것에 대한 거냐면, 그게 제일 눈에 보이는 거라서야. 흔적이 남느냐 안 남느냐.
네 발자국은 어때? 객잔 앞 진흙길은 아직 다들 깊게 남기고 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