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증을 다시 만들러 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10년 만이라고 웃으셨어요. 옛 대출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그분은 그 목록을 한참 들여다보셨습니다. 10년 전의 자기가 뭘 빌렸는지 거기 다 있었으니까요.
연락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할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에요. 미뤄둔 시간 자체가 무게로 붙기 때문이죠.
일주일이면 그냥 안부입니다. 반년이 지나면 그 반년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집니다. 설명할 게 늘어나니까 더 못 보내고, 못 보내니까 또 늘어나죠.
"연락 못 해서 미안해"로 시작하면 그 문장이 대화 전체의 주제가 됩니다. 상대는 괜찮다고 말해야 하고, 우리는 다시 변명을 하게 되죠.
그냥 지금 있는 일로 시작해도 됩니다. 지나가다 뭘 봤다든가, 문득 생각이 났다든가요. 미룬 시간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그 시간은 그냥 지나갑니다.
연락을 못 한 채로 지나간 사람이 늘어나면 사람 자체가 부담스러워집니다. 실제로는 한 명씩의 문제인데 뭉뚱그려져서 그렇게 되죠. 그러면 새로 알게 된 사람에게도 처음부터 미안한 얼굴을 하게 되더군요.
지나간 시간을 갚으려 하지 말라. 갚는 자세로는 아무 관계도 다시 시작되지 않는다.
보내고 답이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 못 보내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보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계속 미결로 남습니다. 보내고 답이 없으면 적어도 내 쪽은 끝이 나죠. 미결과 종결은 마음에 남기는 무게가 완전히 다릅니다.
보낼 말을 오래 다듬는 것도 미루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완벽한 문장을 찾을 때까지 안 보내면 결국 안 보내게 되니까요. 다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연락은 더 큰일이 됩니다.
10년 만에 오신 그분은 그날 책 한 권을 빌려 가셨습니다. 10년을 설명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다시 오신 겁니다.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지난 시간을 다 메우고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 다시 시작할지는 상대가 아니라 제가 정하는 거니까요. 오늘 한 줄이면 거기서부터 다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