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쯤 들어오신 손님이 디카페인을 시키셨어요. 그런데 주문하시면서 먼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맛없어도 괜찮아요."
그 말이 좀 걸렸어요. 시키기 전부터 포기하고 시키신 거잖아요. 그날은 잔을 드리면서 몇 마디 더 붙였어요.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풀어보려고 해요.
디카페인이라고 하면 다 볶은 커피에서 카페인만 걸러낸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요. 순서가 반대예요.
아직 볶지 않은 초록색 생두 상태에서 카페인을 먼저 빼내고, 그다음에 볶습니다. 그러니까 디카페인은 원두의 종류가 아니라 원두가 거쳐온 공정의 이름이에요.
빼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어요. 물에 담가서 빼는 방식, 이산화탄소를 써서 빼는 방식이 흔하고요. 요즘 카페에서 쓰는 건 대부분 이 둘 중 하나예요.
카페인만 딱 집어서 뽑아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돼요.
카페인을 물이나 가스로 씻어낼 때 향을 만드는 성분들도 조금씩 같이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같은 농장 원두라도 디카페인 쪽이 향의 폭이 좁아져요. 단맛은 남는데 코로 올라오는 부분이 얇아지는 느낌이에요.
거기다 생두가 물을 먹고 마르는 과정을 한 번 더 겪으니까 조직이 약해져요. 볶을 때 더 예민하고, 조금만 오래 볶아도 탄내가 붙습니다. 이게 "디카페인은 텁텁하다"는 인상이 생긴 진짜 이유예요.
가게에서 제가 손님들께 실제로 권해드리는 건 세 가지예요.
향이 얇아진 자리를 우유가 채워줘요. 라떼로 마시면 디카페인인지 아닌지 구분 못 하시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차갑게 마시면 텁텁한 쪽이 덜 올라오고요.
그리고 이게 제일 큽니다. 디카페인은 회전이 느린 메뉴라서, 한 봉지를 오래 쓰는 가게가 많거든요. 오래된 디카페인은 원래 얇은 향이 더 얇아져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디카페인이라서 맛이 없는 게 아니라 관리가 덜 된 디카페인이 맛이 없는 거예요.
저는 디카페인도 일반 원두와 같은 주기로 들여놓고, 남으면 그냥 버립니다. 아깝지만 그게 맞아요. 한 잔 아끼려다 그 손님이 디카페인 자체를 포기하게 되니까요.
밤에 커피를 못 드시는 게 아니라, 밤에 드실 커피를 아직 못 만나신 거예요.
"여기 디카페인 어때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돼요.
파는 사람은 자기 가게 디카페인이 잘 나가는지 아닌지를 알아요. 회전이 좋은 집이면 자신 있게 권할 거고, 아니면 오늘은 다른 걸 드셔보시라고 할 겁니다. 그 대답만 들어도 절반은 걸러져요.
그날 그 손님은 라떼로 바꿔서 드시고 가셨어요. 나가시면서 잔을 반납하시더니, 다음엔 뜨거운 걸로 먹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저는 좋았어요.
밤에 커피가 당기는 마음은 커피가 마시고 싶은 게 아니라 하루를 조금 더 늘리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그 마음까지 카페인 빼듯 뺄 수는 없으니까, 마실 만한 걸 찾아드리는 게 제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