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인 것 같은 손님이 저녁에 오셔서 두 시간을 앉아 계신 적이 있습니다. 책은 안 빌리셨어요. 그냥 앉아 있다 가셨습니다.
나가시면서 하루가 다 갔다고 혼잣말을 하시더군요.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일한 날은 기억에 남습니다. 사건이 있으니까요. 쉰 날은 사건이 적어서 통으로 사라지죠.
그래서 하루를 잘 쉬고도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라, 표시가 안 남은 겁니다.
누워서 화면만 보다 저녁이 된 날은 유독 허전하더군요. 그때 우리는 계속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도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받기만 한 시간은 잘 안 쌓이거든요. 몸을 조금이라도 쓰거나 손으로 뭔가를 한 시간이 기억에는 더 오래 남습니다.
저도 쉬는 날에 아무 데도 안 가고 누워만 있던 적이 많습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이 더 무겁더군요. 쉬었는데 회복이 안 된 것 같은 그 느낌요.
흘러 들어온 것은 흘러 나간다. 남는 것은 손을 댄 것뿐이다.
푹 쉬었다고 말하는 분들의 하루를 들어보면 대개 장면이 하나씩 있어요. 어디를 걸었다든가, 무슨 냄새가 났다든가요.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표시가 하나만 있으면 그 하루는 통으로 사라지지 않더군요. 쉼의 질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표시의 유무에서 갈립니다.
쉬는 날을 통째로 비워두면 오히려 불안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화면을 켜게 되죠. 비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비운 다음이 정해지지 않은 겁니다.
다음 쉬는 날에 할 일을 딱 하나만 정해두시면 됩니다. 계획표를 만들자는 말이 아니에요. 그러면 쉬는 날이 또 일이 되니까요.
그 하나가 그날의 표시가 됩니다. 나머지 시간은 마음껏 흘려보내도 됩니다. 무엇을 남길지는 내가 하나만 고르면 되는 일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