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책을 한 장씩 말려서 가져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페이지가 물결처럼 부풀어 있었어요.
말리느라 며칠이 걸렸을 겁니다. 저는 그 손이 먼저 보였습니다.
망가진 책을 그냥 반납대에 놓고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저희는 결국 알게 됩니다. 정리하면서 다 보이거든요.
그러면 절차가 길어집니다. 말씀하고 가셨으면 그 자리에서 끝날 일이 며칠 걸리는 일이 되죠. 숨기는 데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큽니다.
도서관마다 규정이 있습니다. 같은 책으로 물어주시거나 정해진 값을 내시는 식이죠.
정해진 절차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더군요. 미안함을 감정으로 갚지 않아도 되니까요. 절차가 있으면 죄책감이 계산 가능한 크기로 줄어듭니다.
아이가 그림책에 낙서를 해서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대개 아이보다 부모님이 더 어쩔 줄 몰라 하시죠. 저는 그럴 때 지우개부터 꺼냅니다.
잘못을 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말을 늦춘다. 그러나 늦어진 만큼 그 잘못은 자란다.
찢어진 정도라면 저희가 수선해서 다시 꽂기도 합니다. 테이프 자국이 남은 책들이 서가에 꽤 있어요.
그 자국은 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지나왔다는 표시입니다. 새 책보다 그런 책이 더 많이 나가는 경우도 있더군요.
말씀드리고 물어주면 그 일은 끝납니다. 그다음이 중요하죠.
그분은 그 뒤로 책을 가방에 따로 넣어 다니시더군요. 사과보다 그게 더 정확한 표시였습니다. 저는 그런 걸 신뢰라고 부릅니다.
책을 아예 잃어버리신 경우도 있어요. 그때도 절차는 있습니다. 없어진 걸 없어졌다고 말하는 게 제일 빠른 길이더군요.
망가뜨린 사실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되돌릴 수 있는 건 그다음에 무엇을 하느냐뿐이죠.
그 선택은 규정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겁니다. 저는 젖은 책을 말려 오신 그분을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