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결정을 내리신 이야기였습니다. 삼십 분 내내 잘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안되면 무엇이 남는지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건 용기가 아닙니다. 아직 무모함 쪽입니다.
먼저 오해를 하나 걷어야 합니다. 용기는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닙니다. 두렵지 않으면 넘을 것도 없으니까요. 두려운데 건너는 것이 용기입니다.
무모함도 건넙니다. 그러니 건넜다는 사실만으로는 두 이름이 안 갈립니다.
갈리는 자리는 하나입니다. 건너기 전에 잃을 것을 세었느냐. 용기는 세고 건너고, 무모함은 안 세고 건넙니다.
여기서 흔한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잘되면 용기였고 안되면 무모함이었다고 나중에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그건 순서가 뒤집힌 판정이지요. 안 세고 건넜는데 운 좋게 잘된 경우는 여전히 무모함입니다. 세고 건넜는데 안된 경우는 여전히 용기입니다. 이름은 결정하는 순간에 정해지고 결과가 바꾸지 못합니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할까요. 결과로 이름을 붙이면 다음 판에서 배울 게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잘됐으니 잘한 결정이라고 정리해 버리면 안 센 습관이 그대로 남습니다.
지금 앞에 둔 결정이 있으시면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안될 경우에 무엇이 남습니까?
세었다고 해서 안 건너는 게 아닙니다. 세고 나서도 건널 만하면 건너는 것이고, 그때 그 결정은 훨씬 단단해집니다.
사람이 잃을 것을 안 세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면 못 건널까 봐 그렇습니다. 마음이 이미 정해졌는데 숫자를 보면 흔들릴 것 같으니까 안 보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로 갑니다. 안 세고 건넌 사람은 중간에 흔들립니다. 예상 못 한 것이 나오면 그때마다 무너지니까요. 세고 건넌 사람은 같은 일이 와도 이미 아는 항목이라 덜 흔들립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세어보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말로 들으시는 겁니다. 그건 다른 말입니다. 저는 건널지 말지를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세었는지만 여쭙니다.
용기 쪽이면 할 일은 건너는 것입니다. 이미 셌으니 더 미룰 이유가 없겠지요.
무모함 쪽이면 할 일은 그만두는 게 아닙니다. 잃을 것을 세 줄로 적는 것입니다. 세 줄이면 충분합니다. 적고 나서 여전히 건너고 싶으면 그때 그 결정은 이름이 바뀌어 있을 겁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건널지 말지 정하기 전에 세 줄만 적어보시죠. 적히면 그 다음은 훨씬 조용합니다.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