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시간쯤에 수첩을 꺼내 뭘 적으시던 손님이 계셨어요. 몇 줄 적으시더니 덮으시고, 다시 펴서 한 줄 더 적으시더라고요.
내일 할 일을 적으신 거였어요. 저도 그날 밤에 누워서 비슷한 걸 했어요.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볼게요.
낮에는 안 떠올라요. 눕고 불을 끄면 그때 하나씩 올라와요.
저는 이게 조용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낮에는 눈앞에 처리할 게 계속 있으니까 다음 일이 낄 자리가 없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되면 그동안 밀려 있던 것들이 순서대로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밤에 생각이 많아지는 건 걱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때가 유일하게 빈 시간이라서 그래요.
떠오르는 걸 자세히 보면 대개 큰일이 아니에요.
우유 시켜야 하는 것, 전화 한 통 해야 하는 것, 서류 어디 뒀는지 확인하는 것. 낮에 하면 오 분이면 끝나는 것들이에요. 밤에는 그게 열 개쯤 되면 감당 못 할 산처럼 보입니다.
머리가 잊어버릴까 봐 계속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세도 세도 줄지 않아요. 세는 게 붙잡는 방법이거든요.
가게에서 마감할 때 저는 카운터에 종이 한 장을 두고 나와요.
세 줄 넘게 적으면 오히려 잠이 안 오더라고요. 다 적어야 할 것 같아지거든요. 두 줄만 적고 나머지는 내일의 나한테 넘깁니다.
적어두면 머리가 놓아줘요. 종이가 대신 붙잡고 있으니까요. 그게 목적이에요.
메모 앱에 적으려고 휴대폰을 켜면 다른 게 눈에 들어와요. 그러다 삼십 분이 갑니다.
머리맡에 종이랑 펜을 두고 어둠 속에서 대충 갈겨쓰는 게 저는 훨씬 나아요. 아침에 보면 글씨를 못 알아볼 때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어차피 중요한 건 다시 떠오르니까요.
적어도 안 멈출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저는 일어나요.
물 한 잔 마시고 십 분쯤 앉아 있다가 다시 눕습니다. 누워서 버티면 그 자리가 생각하는 자리가 돼버려요. 몸을 한 번 일으키면 그게 끊어지더라고요.
침대에서 오래 뒤척이면 침대가 일하는 자리가 돼요. 그럼 다음 밤에도 거기서 일하게 돼요.
그 손님은 수첩을 덮으시고 나가시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적어놓으면 좀 낫다고요.
맞아요. 적는 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려놓는 동작이에요. 다 적었으면 그다음은 안 하셔도 돼요.
내일 할 일은 내일 아침에 세셔도 늦지 않아요. 아침에 세면 열 개가 세 개로 줄어 있는 걸 자주 보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