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우려를 표했다는 자막을 봤습니다. 그 아래로 한참을 봤는데 무엇을 하겠다는 말은 한 줄도 안 나왔습니다.
며칠 뒤 카페에서 옆자리 손님이 그 대목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거 사실상 경고 아니야?" 저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경고였다면 뒤에 붙는 문장이 있었을 겁니다.
우려는 손을 못 쓰는 사람의 감정 표명입니다. 마음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까지가 전부입니다. 뒤에 붙는 행동이 없습니다.
경고는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의 통보입니다. 계속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이 반드시 뒤에 붙습니다. 붙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에게 그럴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기의 차이가 아닙니다. 아주 강한 어조의 우려도 우려이고, 조용한 한마디도 권한이 있으면 경고입니다. 어조가 아니라 자리입니다.
앞서 걱정과 염려를 갈라둔 적이 있습니다. 그건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나가면 염려, 돌아오면 걱정.
우려와 경고는 축이 다릅니다.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봅니다. 마음의 방향이 아니라 권한의 유무입니다. 두 축을 섞으면 남의 말을 잘못 읽게 되지요.
이 혼동은 화면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까운 데서 더 자주 봅니다.
이 문장들 뒤에 실제 권한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똑같이 붙습니다. 권한이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그건 부드럽게 포장된 경고입니다. 권한이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그건 그냥 우려입니다.
같은 문장인데 하나는 지켜야 하고 하나는 안 지켜도 됩니다. 그래서 이걸 못 가르면 두 방향으로 틀립니다. 우려를 경고로 읽으면 안 해도 될 일을 하게 되고, 경고를 우려로 읽으면 해야 할 일을 놓칩니다.
그 사람이 마음먹으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그 사람이 옳은지 그른지를 안 봅니다. 권한이 있다고 옳은 것도 아니고 없다고 틀린 것도 아닙니다. 제가 재는 건 그 말이 나에게 무엇으로 도착하느냐뿐입니다.
경고 쪽이면 할 일은 뒤에 붙은 문장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계속되면 무엇을 하겠다고 했는지, 정확히 적어두시면 됩니다. 적어두면 대응할 수 있습니다.
우려 쪽이면 할 일은 들은 것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참고로 두라는 뜻입니다. 우려를 경고로 잘못 읽으면 아무 권한 없는 사람의 한마디에 밤을 새우게 되겠지요. 저는 그게 가장 아깝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마음에 걸린 한마디가 있으셨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그 사람이 마음먹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