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두 쪽만 사진으로 찍어 가신 분이 계셨습니다. 다음 날 그 책을 빌리러 오셨더군요.
저는 그게 꽤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책 한 권을 다 읽어보고 고를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목차가 무엇까지 알려주고 무엇은 안 알려주는지는 알고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목차는 요약이 아닙니다. 저자가 이 주제를 어떻게 잘랐는지 보여주는 도면이죠.
같은 주제를 놓고도 어떤 사람은 시간 순으로 자르고, 어떤 사람은 쟁점별로 자릅니다. 그 선택에 이미 그 사람의 관점이 들어 있습니다. 목차를 읽는다는 건 내용을 미리 아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을 먼저 보는 일입니다.
훑기만 하면 제목만 지나갑니다. 저는 이 셋을 봅니다.
첫째, 장의 개수와 두께 배분. 열 장인데 한 장이 유독 두꺼우면 그게 이 책의 진짜 주제입니다. 제목에 안 나온 주제가 거기 숨어 있는 경우가 많죠.
둘째, 마지막 장이 무엇인가. 책은 대개 도착하고 싶은 곳을 마지막에 둡니다. 마지막 장이 요약이면 정리하는 책이고, 새로운 주장이면 설득하는 책입니다.
셋째, 소제목의 말투. 소제목이 물음표로 끝나면 같이 생각하자는 책이고, 단정형이면 알려주겠다는 책이더군요. 어느 쪽이 나은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느 쪽이 필요한지의 문제죠.
여기가 중요합니다. 목차는 문장의 밀도를 절대 안 알려줍니다.
같은 목차로도 어떤 책은 술술 넘어가고 어떤 책은 한 쪽에 삼십 분이 듭니다. 그래서 목차만 보고 고르면 내용은 맞는데 못 읽는 책을 들고 가게 됩니다. 서가 앞에서 되돌아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이 경우예요.
그리고 목차는 저자가 다듬은 겁니다. 실제보다 정연해 보이게 만들 수 있죠. 목차가 지나치게 깔끔한 책은 오히려 한 번 의심해볼 만합니다.
잘 정돈된 지도는 그 땅이 평탄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도를 그린 이의 손이 정돈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목차를 보고 마음이 기울었다면 거기서 멈추지 마시고 하나만 더 하십시오.
가장 끌린 장을 펼쳐서 한 쪽만 읽어보는 겁니다. 목차가 설계도라면 이건 견본 시공입니다. 이 삼십 초가 밀도 문제를 거의 다 걸러줍니다.
앞머리를 읽으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그것보다 이쪽을 권합니다. 앞머리는 대개 가장 공들여 다듬은 자리라 책 전체를 대표하지 않거든요.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목차가 늘 답인 것도 아닙니다.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구조보다 문장이 중요한 책은 목차를 봐야 알 게 별로 없죠. 그런 책은 아무 데나 펼쳐서 한 문단을 읽는 편이 훨씬 정확합니다. 책의 종류에 따라 보는 자리가 달라야 합니다.
목차를 찍어 가셨던 그분은 결국 그 책을 끝까지 읽으셨습니다. 반납하시면서 목차랑 다르더라고 웃으셨죠. 그래도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지도가 정확하지 않아도 길을 나서는 데는 충분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