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관 안내가 나간 뒤에도 안 일어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짐을 싸지도 않고 문 쪽만 계속 보더군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 옆을 두 번쯤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이 얘기가 여기서만 나오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뉴스에도 나오고, 옆 동 이웃도 학원 끝나고 갈 데가 없어서 아이를 도서관에 보낸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집 사정을 모릅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고요. 이 건물 안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만 적어두죠.
몇 년 보다 보니 시간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 번째가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저녁에 아이가 혼자 앉아 있으면 눈에 띄었는데 지금은 안 띕니다. 여럿이니까요.
이건 판단이 아니라 본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책을 읽는 아이는 많지 않습니다.
숙제를 하다가, 엎드려 자다가, 화면을 보다가 합니다. 도서관에 왔지만 도서관에 온 이유가 책은 아닌 겁니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여기가 그 시간에 문이 열려 있고 돈이 안 드는 몇 안 남은 자리니까요.
저희는 보육 기관이 아닙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아이가 다치면 책임 소재가 애매하고, 늦게까지 남아 있어도 데리러 오라고 연락할 데가 마땅치 않습니다. 폐관하면 문을 닫아야 하니 결국 내보내게 되죠. 그게 저희가 하는 일의 끝입니다.
그래서 저녁마다 그 자리를 지나가면서도 저는 대개 아무 말도 안 합니다.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압니다.
문이 열려 있다는 것만으로 하는 일이 있다. 그 일에는 이름이 없다.
이 얘기를 꺼내면 대개 그쪽으로 흐릅니다. 저는 그 자리가 아니에요.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아이를 어디에 둘지는 선택지가 있어야 고를 수 있는 문제입니다. 도서관에 보낸다는 건 그중에서 제일 안전한 데를 고른 것이기도 하겠죠. 밖에 있는 것보다는 여기가 낫다고 판단한 겁니다.
저는 그 판단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여기가 낫거든요.
문 쪽만 보던 그 아이는 결국 십 분쯤 뒤에 나갔습니다. 데리러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날 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아무도 왜 여기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는 건 압니다. 목적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라는 게 그런 뜻이죠.
여기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엽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자리 하나쯤은 동네에 있어야 할 테고요. 저는 그 자리를 지키는 일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