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오시는 손님이 계십니다. 어떤 책을 빌리시는지도 알고 어느 자리에 앉으시는지도 압니다. 그런데 이름은 회원증을 봐야 알아요.
얼굴은 저절로 붙는데 이름은 그렇지 않더군요.
얼굴이나 목소리에는 정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그 사람과 아무 관련이 없는 소리 조합이죠. 붙잡을 고리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을 못 외우는 건 기억력 문제라기보다 구조 문제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걸 알고 나서 좀 편해졌어요.
이름을 잊으면 그 사람을 소홀히 대한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더군요.
저는 그 손님이 몇 시쯤 오시는지, 어떤 책에서 멈추셨는지를 다 기억합니다. 이름만 빠져 있을 뿐이에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세어보면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도서관에서는 이름을 부를 일이 거의 없습니다. 예약 도서를 찾아드릴 때 정도죠. 부를 일이 없으면 이름은 더 빨리 흐려지더군요.
이름은 사람을 부르기 위한 손잡이다. 손잡이를 잊었다고 그 안이 빈 것은 아니다.
그래도 외우고 싶으시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이름을 다른 것에 걸어두는 것요.
저는 회원증을 볼 때 그 이름을 그분이 빌려 간 책과 같이 떠올려 봅니다. 소리만 있던 이름에 장면이 하나 붙는 거죠. 그러면 다음번에는 회원증을 안 봐도 되더군요.
반대로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명찰을 한 번 보고 다음 주에 그대로 부르시더군요. 그럴 때 저는 조금 놀랍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름을 불린다는 게 그런 일이에요.
이름이 안 떠오를 때 아는 척하고 넘어가는 게 더 어색합니다. 한 번 물어보면 끝날 일이에요.
다시 여쭤봐도 되겠느냐고 하면 대부분 웃으면서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물어본 이름은 잘 안 잊히더군요.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건 결국 내 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