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일은 다가오는데 책은 아직 절반입니다. 읽고 싶어서 빌린 건데 어느새 숙제처럼 얹혀 있죠.
연장을 세 번 하고 결국 그대로 반납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첫 장에 영수증이 꽂힌 채였어요. 세 번을 미룬 자리가 거기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기한이 없는 책은 잘 안 펴집니다. 사두고 몇 년째 그대로인 책이 집집마다 있거든요.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건 언제 읽어도 된다는 뜻이고, 그러면 오늘은 아니게 되죠.
빌린 책은 다릅니다. 돌려줘야 하니까 손이 가요. 기한은 압박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게 시작 버튼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절반만 읽고 반납하면 실패한 기분이 들겠죠. 그런데 절반은 읽은 겁니다. 한 장도 안 편 책이 집에 몇 권인지 세어보면 계산이 달라지더군요.
책은 완주 기록이 아니라 만난 흔적으로 남습니다. 어디까지 갔느냐보다 그 안에서 무엇이 걸렸느냐가 오래 남아요.
반납대에 서서 "죄송해요, 못 읽었어요" 하시는 분이 하루에 몇 분은 계십니다. 저는 그 말이 늘 이상하게 들려요. 도서관에 사과할 일은 아니거든요.
끝까지 간 자만 얻는 것은 없다. 걸어 들어간 만큼이 이미 길이다.
같은 책을 다시 빌려 가시는 분을 자주 봅니다. 그런 분들은 앞부분을 아주 빠르게 지나가요. 처음에 읽은 게 사라진 게 아니라 아래에 깔려 있었던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반납대에서 미안해하시는 분께 별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또 오시면 되니까요.
책을 오래 붙잡고 있는 것과 오래 읽는 것은 다릅니다. 붙잡고만 있으면 그 책은 가방에서 무게로만 존재하죠. 차라리 한 번 돌려주고 다시 빌리는 편이 가벼워요.
정해진 날짜가 부담이면 목표를 바꿔보세요. 다 읽기 말고 어디까지로요. 세 장까지만, 아니면 마음에 걸리는 문장 하나만 찾기로요.
기한은 남이 정해줬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할지는 제가 정합니다. 그렇게 한 번 정해두면 반납일이 마감이 아니라 나와의 약속이 되더군요. 그 약속은 지킬 수 있는 크기로 내가 만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