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칸의 책을 꺼내려고 십 분 넘게 까치발을 드시는 분을 봤어요. 사다리는 두 걸음 옆에 있었고 저는 계속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가서 꺼내드렸죠.
부탁 한 마디가 십 분보다 어려운 순간이 있더군요.
말을 못 꺼내는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에요. 대개는 빠른 계산이 먼저 돌아갑니다. 이 사람이 바쁘면 어쩌지, 거절당하면 어색해지지 않을까, 이 정도도 혼자 못 하나 싶겠지.
이 계산은 나름 합리적이라 반박이 잘 안 되죠. 그래서 대부분 계산이 이기고, 우리는 혼자 십 분을 씁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부탁은 내 상태를 드러내는 일이거든요. 이걸 혼자 못 한다는 사실이 같이 전달되니까, 부탁이 작을수록 오히려 말하기가 어려워지더군요.
그런데 계산에서 자주 빠지는 항목이 있어요. 부탁하지 않아서 생기는 비용입니다. 시간이 더 들고, 결과가 나빠지고, 무엇보다 상대는 내가 힘들었다는 걸 끝내 모르게 되죠.
관계는 주고받는 횟수로 두꺼워지는 면이 있습니다. 한 번도 안 받은 사람에게는 상대도 못 부탁하더군요. 그러니 부탁을 아끼면 관계도 같이 얇아집니다.
서고에서도 비슷한 걸 봐요. 자주 물어보시는 분들은 원하는 자료를 훨씬 빨리 찾아가십니다. 한 번도 안 물어보신 분은 몇 달째 같은 서가를 헤매고 계시고요.
홀로 다 지려는 자는, 곁을 내주지 않는 자와 같다.
저는 큰 부탁보다 작은 부탁을 먼저 권해요. 오 분이면 되는 일, 상대가 쉽게 승낙할 수 있는 일부터 말이죠. 작은 부탁은 거절당해도 타격이 적고, 승낙되면 다음 부탁이 쉬워집니다.
그리고 부탁할 때 이유를 길게 붙이지 않는 편이 낫더군요. 설명이 길면 상대는 그만큼 무거운 일로 느끼거든요. 짧게 말하고 상대가 정하게 두는 편이 서로 편합니다.
거절당했을 때를 미리 정해두는 것도 도움이 돼요.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알겠다고 하고 다음 사람에게 가면 되죠. 거절은 나에 대한 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정일 때가 훨씬 많더군요.
부탁이 어렵다면, 성격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오 분짜리 부탁 하나만 골라서 말해보세요.
혼자 지는 것이 늘 강한 것은 아니더군요. 어디까지 혼자 하고 어디서 부를지, 그 선은 내가 긋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