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시키지 않은 정리를 매번 자기가 하고 있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그걸 자기 일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제가 여쭈었습니다. 그 일은 어디까지 하면 끝납니까?
대답을 못 하셨습니다. 끝을 말할 수 없는 일은 맡은 일이 아닙니다.
책임은 내가 맡기로 한 것입니다. 맡을 때 범위가 같이 정해집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가 있고, 다 하면 끝납니다. 무거워도 끝은 보입니다.
부담은 얹힌 것입니다. 맡은 적이 없으니 범위도 없습니다.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안 정했고, 그래서 아무리 해도 안 끝납니다.
그러니 무게의 차이가 아닙니다. 아주 무거운 책임도 끝이 있고, 가벼운 부담도 끝이 없습니다. 갈리는 건 경계입니다.
책임은 다 하면 내려놓습니다. 내려놓는 순간이 있으니 회복이 됩니다.
부담은 내려놓는 순간이 없습니다. 일이 끝나도 안 끝납니다. 다음에도 내가 해야 할 것 같고, 안 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한 일의 양보다 훨씬 더 지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부담은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맡은 적이 없는 일이니 남들 눈에는 그냥 원래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매번 정리하시던 그분이 지쳤던 건 일의 양 때문만은 아니었겠지요.
그 일이 어디까지면 끝입니까? 그리고 그 끝을 누가 정했습니까?
두 번째 질문이 중요합니다. 나 혼자 정한 끝은 언제든 내가 늘릴 수 있으니 끝이 아니지요. 합의되지 않은 경계는 경계가 아닙니다.
책임 쪽이면 할 일은 그냥 하는 것입니다. 끝이 있으니 갈 수 있습니다.
부담 쪽이면 할 일은 경계를 한 번 말로 놓는 것입니다. 그만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하셔도 됩니다. 다만 어디까지인지를 소리 내어 정하시라는 겁니다.
"이건 이번까지 제가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 한 문장이 얹힌 것을 맡은 것으로 바꿉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이름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면 끝나는 지점이 생깁니다.
그리고 말해놓고 나면 알게 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일을 정말 나만 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 대개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안 물어봤을 뿐이지요.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요즘 무거운 일이 있으시다면 하나만 해보시죠. 어디까지면 끝인지 한 줄로 적어보는 겁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