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밀린 설거지 이야기를 하시면서, 같은 날 저녁 약속에는 옷을 갈아입고 나가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게으르다고 결론을 내리셨지요.
결론이 틀렸습니다. 게으름이면 약속도 안 나가셨을 겁니다.
귀찮음은 몸에 걸린 상태입니다. 무엇을 하든 시작 비용이 커진 것이라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설거지도 무겁고 씻는 것도 무겁고 나가는 것도 무겁습니다.
하기 싫음은 일에 걸린 상태입니다. 그 일에만 붙습니다. 다른 일은 멀쩡히 됩니다. 오히려 그 일을 피하려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구별은 어렵지 않습니다. 전부 안 되면 몸이고, 그것만 안 되면 그 일입니다.
둘을 굳이 갈라야 할까요? 갈라야 합니다. 이름이 섞이면 자기 판정이 통째로 틀어집니다. 하기 싫음을 귀찮음으로 부르면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특정한 일 하나가 안 되고 있는 것뿐입니다.
사람 전체에 붙인 판정은 고칠 방법이 없겠지요. 일 하나에 붙인 판정은 고칠 방법이 있지요. 어디에 이름을 붙였느냐가 그대로 해결 가능성을 결정합니다.
그 일만 안 될 때는 이유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체로 셋 중 하나입니다.
이 셋은 대상이 달라 푸는 법도 다릅니다. 그런데 전부 귀찮음이라고 부르면 셋 다 커피 한 잔으로 해결하려 들게 됩니다. 될 리가 없지요.
지금 안 되고 있는 일이 있으시면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오늘 다른 일은 되셨습니까?
귀찮음 쪽이면 할 일은 그 일이 아닙니다. 잠, 끼니, 앉아 있던 시간 같은 것들이지요. 몸의 상태가 원인인데 의지로 밀면 다음 날 더 안 됩니다.
하기 싫음 쪽이면 할 일은 크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설거지 전부가 아니라 컵 세 개까지만이요. 하기 싫음은 대개 일의 총량에 붙어 있어서, 총량을 잘라내면 저항도 같이 줄어듭니다.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시작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시작을 못 해서 또 자기를 탓하시는 겁니다. 시작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시작해야 할 덩어리가 아직 너무 큰 것입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밀려 있는 일이 있으시면 오늘 된 일부터 세어보시죠. 하나라도 됐다면 게으른 게 아닙니다.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