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있다는 얘기를 손님한테서 들었습니다. 우산이나 공구, 큰 냄비 같은 것까지요.
한 분이 대출대에 우산을 올려놓고 물으셨습니다. 여기도 이런 게 되느냐고요. 뉴스에서 봤다고 하시더군요.
저희는 아직 책만 빌려드립니다. 그렇게 말씀드리자 옆에 계시던 두 분이 같이 고개를 돌리셨어요. 아쉬워하시는 얼굴이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그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아쉬워하신 게 우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책을 빌려 가시는 분들을 오래 봤습니다. 빌린 물건에는 사서 쓰는 물건에 없는 것이 하나 붙습니다. 돌려줄 날짜죠.
날짜가 붙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사놓고 몇 달을 안 펼치던 사람이 빌린 책은 열흘 안에 읽습니다. 같은 책인데도 그렇더군요.
소유는 여유를 주고 대여는 기한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를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쪽은 대체로 기한이었어요.
물건을 빌린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도 낯설었습니다. 가난해서 빌린다고 읽히기 쉬우니까요.
그런데 저희 열람실 서가를 한 번 둘러보면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여기 있는 책 중에 제 것은 한 권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서가를 매일 씁니다. 가지지 않았다고 못 쓰는 게 아니었던 겁니다.
일 년에 두 번 쓰는 공구를 사서 창고에 두는 일과, 필요할 때 빌려서 쓰고 돌려주는 일 중에 무엇이 더 가난한 쪽인지는 생각해볼 만합니다.
손에 쥐고 있는 것과 쓰고 있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공짜라는 뜻은 아닙니다. 빌린 물건에는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이 따라옵니다. 망가뜨리면 미안해지고, 늦으면 눈치도 좀 보입니다.
그 부담이 싫어서 결국 사버리는 마음도 압니다. 저도 몇 번 그랬으니까요. 사면 아무한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러니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지불할지의 문제입니다. 돈을 낼지, 기한과 약간의 부담을 낼지요.
빌리는 곳이 늘어난다는 얘기가 반가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가질지 말지를 고를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지금까지는 필요하면 사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잘 없었습니다. 길이 하나뿐이면 그건 선택이 아닙니다. 두 번째 길이 생겨야 비로소 무엇을 정말 곁에 두고 싶은지 물을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책만은 사서 곁에 둡니다. 밑줄을 긋고 싶으니까요. 그 대신 다른 것들은 점점 안 사게 되더군요.
무엇을 사고 무엇을 빌릴지 정하는 일은 결국 무엇이 나에게 오래 남을 것인지를 정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건 아직 각자가 정해야 하는 몫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