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아무것도 안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는 일한 날보다 더 피곤하셨다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자기가 쉴 줄 모르는 사람인가 하셨습니다.
시간의 양은 같았을 겁니다. 다만 그 시간의 이름이 여유가 아니라 심심함이었습니다.
심심함은 시간을 견디는 상태입니다. 빈 시간이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안 하고 있다는 감각이 계속 옆에 있지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힘이 듭니다.
여유는 시간을 쓰는 상태입니다. 같은 빈 시간인데 내가 그 시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내가 골랐다는 감각이 있으면 쉬어집니다.
차이는 활동량이 아닙니다. 고른 것이냐 남겨진 것이냐입니다.
여기서 자주 오해가 생깁니다. 쉬려면 아무 일정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일정이 텅 빈 하루가 오히려 더 안 쉬어질 때가 많습니다.
남겨진 시간에는 이름이 안 붙어 있습니다. 이름이 없으니 뭘 하든 이게 맞나 싶고, 그 판정을 하루 종일 하게 되지요. 판정은 노동입니다. 그래서 쉰 게 아니라 하루 종일 심사한 셈이 됩니다.
반대로 두 시간을 "오늘은 그냥 늘어지는 시간"이라고 이름 붙여 두면 그 두 시간은 쉬어집니다. 같은 늘어짐인데 결과가 다릅니다.
빈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렇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 시간을 시작할 때 뭐라고 부르셨습니까?
피곤한지 아닌지로는 못 가립니다. 심심함도 피곤하고 뭘 많이 한 여유도 피곤하니까요. 봐야 할 것은 시작할 때의 이름이지요.
심심함 자체가 없애야 할 상태는 아닙니다. 견디는 시간에서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안 하던 생각이 올라오고, 미뤄둔 감정이 표면에 뜨기도 합니다.
다만 그것도 이름을 붙여야 값을 합니다. "오늘은 심심할 시간"이라고 정하면 심심함이 여유가 됩니다. 이름이 붙는 순간 견디는 자리에서 고른 자리로 옮겨가니까요.
여기서 자주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심심함을 없애려고 화면을 켜는 겁니다. 그러면 시간은 지나가는데 견딤은 안 끝납니다. 이름이 안 붙었으니까요.
여유 쪽이면 할 일이 없습니다.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심심함 쪽이면 할 일은 뭔가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시간에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한 줄이면 됩니다. 오늘 저녁 두 시간은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이라고요. 그렇게 정해두면 같은 두 시간이 견딤에서 쓰임으로 넘어갑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빈 시간이 있으시면 시작할 때 한 줄만 정해두시죠. 같은 시간이 다른 이름으로 지나갑니다.
이름을 붙이면 크기를 잴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