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려고가 아니라 놓으려고 산다는 얘기를 손님한테서 들었습니다.
한 분이 대출대에 열 권을 올려놓으셨는데 표지 색이 전부 비슷했습니다. 내용은 서로 아무 상관이 없었죠.
여쭤보니 웃으면서 색을 맞추려고 그런다고 하셨습니다. 벽 한 면에 세워둘 거라고요. 뉴스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봤다고 하시더군요.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습니다. 오래 이 일을 하다 보면 책이 읽히려고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분이 나가시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책장을 오래 보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읽은 책보다 읽으려고 했던 책이 그 사람을 더 잘 보여준다는 것이죠.
그러니 안 읽고 세워둔 책이 부끄러운 물건만은 아닙니다. 그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목적지 목록에 가깝습니다.
다만 색을 맞춰 고른 열 권은 조금 다릅니다. 그건 목적지가 아니라 벽지에 가깝겠죠.
여기서 쉽게 편을 가르고 싶어집니다. 진짜 독자와 흉내만 내는 사람으로요. 저는 그 구분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책장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결국 한 권쯤 뽑아 보게 됩니다. 저는 그 장면을 여러 번 봤습니다. 손이 닿는 자리에 있느냐 없느냐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더군요.
읽으려고 산 책이 안 읽히는 일도 흔합니다. 그러니 사는 이유로 사람을 가르는 건 별 소용이 없겠죠. 읽히는 순간은 대개 사는 순간보다 한참 뒤에 옵니다.
장식으로 둔 책과 읽으려고 둔 책은 겉으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한 명 있죠. 책을 놓아둔 본인입니다.
그 사람만 압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은근히 오래 마음에 걸립니다. 벽이 그럴듯해질수록 더 그렇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세워둔 것은 언젠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건다.
전부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애초에 가능한 일도 아니고요.
다만 그 벽에서 한 권만 빼서 침대 옆이나 식탁 위처럼 손이 닿는 자리에 놓아보십시오. 벽에 있는 책과 손에 닿는 책은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됩니다.
그 한 권이 읽히면 다음 권은 훨씬 쉬워집니다. 안 읽혀도 상관없죠. 벽으로 돌려보내면 그만이니까요. 그때는 적어도 한 번 펼쳐본 책이 됩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자리에 놓인 책이 있습니까. 그 한 권이 오늘의 시작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