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건넸는데 상대가 못 본 채 지나간 자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건넨 사람은 손을 반쯤 들었다가 옷깃을 만졌습니다.
그 몇 초가 두 감정이 갈리는 자리입니다. 대부분은 그 상태를 한 덩어리로 묶어 부끄러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민망함은 내 행동이 상황과 안 맞았을 때 옵니다. 발음을 틀리거나, 없는 계단을 밟거나, 혼자 웃다가 눈이 마주치거나.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가 아무것도 안 했다는 점입니다. 상대는 그냥 있었고, 어긋난 쪽은 나입니다. 그래서 민망함은 대체로 혼자서도 성립합니다. 빈방에서 혼자 이불을 차게 되는 그 감정이죠.
무안함은 다릅니다. 내가 내민 것을 상대가 받지 않았을 때 옵니다.
인사를 지나쳤거나, 농담에 아무도 안 웃었거나,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거나. 이때 나는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것을 내밀었고, 받는 쪽이 비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무안함은 혼자서는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두 감정을 가르는 첫 번째 표지입니다.
지금 얼굴이 화끈거린다면 이렇게 물어보시죠.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아니면 내가 내민 걸 누가 안 받았습니까.
여기서부터가 실제로 쓰이는 대목입니다.
민망함은 시간이 처리합니다. 어긋난 건 사실이고, 그 사실은 작습니다. 남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해명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뿐이죠.
무안함은 시간이 잘 안 지웁니다. 내가 고칠 게 없기 때문입니다. 고칠 게 없는데도 화끈거리니까, 사람은 억지로 원인을 만들어냅니다. 내가 먼저 인사한 게 주제넘었나,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하는 식으로요. 없는 잘못을 만들어 자기에게 붙이는 것이 무안함의 진짜 위험입니다.
무안함이 왔을 때 필요한 건 반성이 아니라 귀속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 정리해두시면 됩니다. 나는 정상적인 것을 내밀었고, 받지 않은 것은 상대의 사정이다. 못 봤을 수도 있고,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내가 만든 일이 아닙니다.
이 문장을 쓰지 않으면 무안함은 자꾸 자기평가로 번집니다. 한 번 안 받아준 인사가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결론까지 가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하니까요.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같은 상대에게서 무안함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그건 더 이상 무안함이 아닙니다.
한 번은 사정이지만 여러 번은 태도입니다. 그때 붙는 이름은 서운함이거나 모멸감이고, 그 둘은 또 다르게 다뤄야 합니다. 횟수가 이름을 바꾼다는 점은 기억해두실 만합니다.
잠을 못 주무시거나, 일상이 무너지고 있거나, 몸에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건 제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닙니다. 그럴 때는 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이름을 붙이는 일과 치료하는 일은 다릅니다.
저는 이름까지만 붙입니다.
오늘 얼굴이 화끈거린 일이 있으셨다면 하나만 확인해보시죠. 그 자리를 만든 게 나입니까, 상대입니까.
구분하면 할 일이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