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30분 전부터 문 앞에 서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날 비가 오지도 않았어요.
문을 열자 제일 먼저 시계를 보시더군요. 일찍 온 걸 스스로 확인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찍 도착하는 습관은 부지런함이라기보다 불안에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늦었을 때의 장면이 너무 선명한 겁니다.
그래서 여유를 크게 잡죠. 그러면 늦지는 않는데 대신 남는 시간이 매번 생깁니다.
30분이 붕 뜨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시작하기엔 짧고 그냥 서 있기엔 길죠.
그래서 대부분 화면을 봅니다. 그러면 그 30분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으로 지나갑니다. 저는 그게 조금 아깝더군요.
기다림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무엇으로 채울지 아직 정하지 않은 시간일 뿐이다.
저는 일찍 도착하는 분들께 얇은 책을 권합니다. 가방에 한 권만 있으면 그 30분이 통째로 살아나거든요.
책이 아니어도 됩니다. 한 정거장 걷기나 편지 한 줄 쓰기도 좋고요. 무엇이든 미리 정해져 있으면 남는 시간이 어색해지지 않습니다.
기다린 시간을 상대에게 계산해서 말하는 순간 만남이 무거워집니다. 일찍 온 건 내 선택이었으니까요.
말하지 않으면 그 30분은 그냥 내 시간으로 남습니다. 말하는 순간부터 상대의 빚이 되죠. 저는 그 차이가 꽤 크다고 봅니다.
일찍 도착해서 근처를 한 바퀴 도는 분들도 계세요. 그러면 그 동네가 조금 남거든요. 같은 자리를 여러 번 만나도 매번 다른 게 보이더군요.
문 앞에 서 있던 그분은 그다음부터 근처 벤치에서 기다리시더군요. 손에는 책이 한 권 있었고요.
같은 30분인데 서 있는 사람과 앉아서 읽는 사람은 다른 시간을 보냅니다. 무엇을 하며 기다릴지는 내가 정하면 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