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료를 내시면서 미안하다고 세 번 말씀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는데도요.
그런데 나가실 때 표정이 안 풀려 있었어요. 사과를 하고도 정리가 안 된 겁니다.
사과를 받으면 일은 끝납니다. 절차상으로는요. 그런데 마음은 절차대로 움직이지 않죠.
그래서 사과를 받고도 이상하게 허전하거나 오히려 더 답답해집니다. 끝났다고 하는데 나만 아직 거기 있는 것 같거든요.
미안하다는 말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상황을 정리하려는 쪽과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는 쪽이요.
앞의 것만 오면 마음이 안 풀립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가 그 안에 없으니까요. 그럴 때 필요한 건 더 큰 사과가 아니라 정확한 인정이더군요.
닫히지 않는 것은 용서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다.
사과를 받고 안 풀렸다고 말하면 속 좁아 보일까 봐 참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으면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안에서 자리를 잡죠.
한 문장이면 됩니다. 사과는 받았는데 이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고요. 그건 싸움을 다시 여는 게 아니라 정확히 닫으려는 시도입니다.
받은 그날 바로 풀려야 한다는 규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관계에 난 자국은 대개 좀 더 오래 갑니다.
며칠 지나서 괜찮아지는 경우도 많더군요. 그때까지 스스로를 못난 사람 취급하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상대가 사과했으니 끝났다고 정하는 건 상대의 시간표죠. 내 쪽의 시간표는 따로 있습니다.
언제 이 일을 놓을지는 내가 정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음으로 가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